“학교 왜 거기밖에 못갔냐” 공기업 면접관 말에 숨이 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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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법 도입했지만
취준생 10명 중 7명 “채용 공정성 의심”
출신 학교별로 점수 차등 적용하기도

“금수저 들러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자주 있다.”

지난해 취업포털 커리어가 취준생 316명을 대상으로 ‘금수저 채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이렇게 답했다. ‘구직 활동을 하면서 채용 공정성을 의심한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는 응답자 74.1%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구직자의 출신학교나 배경·스펙뿐 아니라 부모의 직업·배경은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채용 비리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지난해 7월17일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법’이다. 직무와 관련 없는 신체적 조건, 출신 지역, 재산, 직계존비속과 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을 이력서에 쓰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채용에 관한 청탁이나 압력, 강요하지 못 하게 했고, 채용을 대가로 금전·물품·향응 또는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수수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앞서 정부는 2017년부터 금융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용 비리는 여전하다.

영화에서 구직자로 나온 정유미에게 직무와 무관한 성희롱성 질문을 하는 장면. 블라인드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이제는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KBS 방송화면 캡처

◇제주 공공기관 20곳 중 15곳 채용 절차 문제 있어

최근 제주도 지방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가 무더기로 드러났다.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추진한 도내 공공기관 신규채용 업무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업무에 대한 감사 결과를 7월 9일 밝혔다. 전체 감사대상 기관 20곳 중 15곳이 채용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

채용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응시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채용 시험 위원을 구성하는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은 응시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시험전형위원으로 위촉해 채용 절차를 진행했다. 또 블라인드 채용을 하지 않고, 서류전형에서 경력 점수와 자격증 점수를 임의로 부여했다. 제주도체육회도 응시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포함해 시험위원을 구성했다. 시험 항목에 대한 평가 기준이나 배점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도 마련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기간제 교사 채용에 지원한 서현진이 해당 학교에 내정자가 있다는 커뮤니티 글을 확인하고 있다./tvN 홈페이지 캡처

제주경제통상진흥원도 전형위원을 구성할 때 응시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배제하지 않아 합격자를 부적절하게 결정했다. 또 인사위원회 심의 내용과 다르게 시험 전형 방법과 합격자 결정 방법 등을 임의로 변경했다. 제주연구원도 응시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시험위원으로 위촉했다. 또 채용 분야별 관련 자격증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자격증 개수에 따라 평가 점수를 부여해 공정성 논란을 낳았다.

이외에도 제주도장애인체육회는 시험 방법과 시험 과목 등의 규정 없이 채용 건별로 임의로 정해 시험 전형을 운영했다. 제주의료원은 임직원 공개채용 시 동점자가 생기자 공고문에서 정한 합격자 결정 기준과 다르게 동점자 중 1명에게 보훈 가점을 부여해 최종 합격시켰다. 

◇공고문에 없는 사진 요구하기도···“이게 무슨 블라인드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공기업 면접에서 학벌을 언급한 사례도 있었다. 한 서울 소재 대학교 취업 준비 오픈채팅방에는 “공기업 면접 중 면접관이 학벌로 면박을 줬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자신의 장점으로 뛰어난 학습 능력을 꼽은 지원자에게 면접관이 “학습 능력이 뛰어난데, 학교는 왜 거기밖에 못 갔냐”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같은 채팅방에 있던 취업준비생 A(27)씨는 “면접에서 서류 제출을 요구한 것도 모자라 학교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라며 “이럴 거면 학벌을 안 본다는 이야기는 왜 하는 거냐”고 했다.

서울시는 계약직 공무원을 뽑는 과정에서 공고문에 쓰여 있지도 않은 사진 제출을 요구했다. 올해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에 지원했다고 밝힌 B씨는 서류를 제출하러 간 자리에서 사진 제출도 요구받았다. B씨는 “사진이 필요한 이유를 물어봤더니 얼버무리고 정확한 답변이 없었다”고 했다. 블라인드 채용인데 사진이 왜 필요하며, 공고도 하지 않은 채 요구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공기업들은 허위 사실을 가려내기 위해 서류 제출을 요구할 뿐, 실제 채용 과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공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면접 때 요구하는 서류는 면접관들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원서에 기재한 내용이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는 용도로만 활용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취준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류전형만 블라인드 채용인 거냐’, ‘학력 증명서를 내는데 이게 어떻게 블라인드 채용이냐’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취준생들이 모이는 카페에 올라온 글./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기업이 추가 서류를 요청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관련 법상 구인자(기업)는 채용 시험을 서류심사와 필기·면접 시험 등으로 구분하는 경우 서류심사에 합격한 구직자에게 입증자료 및 심층 심사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학력 증명서 등을 요구해도 불법은 아닌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제출받은 서류를 전형 중에 평가에 활용하더라도, 명백한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한 별다른 제재가 없다는 점이다.

◇연대 의료원, 학벌로 구직자 차별하다 적발

드라마에서 입사 면접을 보며 고졸이라고 밝힌 설인아와 그를 못마땅해하는 면접관./KBS 방송화면 캡처

출신 대학별로 구직자에게 점수를 차등으로 부여한 곳도 있었다. 연세대 의료원이다. 블라인드 채용법 시행 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학벌로 구직자를 차별해 온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연세대 의료원은 사설 학원에서 펴낸 수능 배치표를 기준으로 대학을 5~7개 등급으로 분류한 순위표를 만들었다. 각 등급에 맞게 최고점은 80점, 최저점은 40점으로 점수를 차등 부여했다. 학벌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점수 차가 최대 40점이었다. 최고점인 80점은 ‘해외 우수대 또는 국내 1~3위 대학 관련학과 졸업생’들만 받을 수 있었다. 연세대 의료원은 2016년 7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사무직·영양사·약사·전산원 등 15개 직종, 67회에 걸친 정규직 채용 서류 심사에서 대학 순위표를 활용했다.

연세대가 서류전형에서 지원자 학력에 따라 등급을 분류해 점수를 준 채점표./교육부

출신대학이 서류전형 합격에 미치는 영향도 컸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4번의 채용 서류심사 배점을 보면, 경력자에게 부여하는 가산점은 최대 30점이었다. 이외에 성적 우수, 어학 성적에 따른 가산점은 최대 15점이었다. 다른 평가항목보다 학력을 중요 평가 잣대로 할용했다는 의미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기자회견을 열고 “직무능력과 무관하게 출신대학을 기준으로 한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채용”이라고 비판했다. 

글 CCBB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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